지나간 역사이야기

★북한 개성 정몽주선생의 유적지★

雪 山(河在斗) 2013. 6. 21. 17:32

 

★북한 개성 정몽주선생의 유적지★

고려말의 충신인 정몽주선생 유적지인

숭양서원과 선죽교, 표충비를 소개합니다.*
숭양서원에서

 

<숭양서원에서의 안내원 모습>
<정몽주의 초상화>
<정몽주가 말에서 내리던 하마대, 건너편엔 승마대가 있음>
<숭양서원 옆에 있는 고목>
<선죽교 표석>
<선죽교, 하마비 등의 표석>
<선죽교>
<정몽주의 피?>
<선죽교 옆의 돌다리>
<선죽교 개천 모습>
<선죽교 비각>
<선죽교 주변 풍경>
<표충비>
 

圃隱 정몽주 선생은 1337년에 태어나 고려 공민왕 9년 나이 23살에 과거를 보아 3장에 연달아 장원급제를 하였으니 한 시대의 수제라고 가히 부를 수 있겠습니다. 벼슬길에 올라 명나라에 다녀온 적도 있고 이미 적지 않은 공을 세웠지만 그 당시에 간신이라고 여겨지던 이인임이라는 자의 중상모략 때문에 귀양 살이를 해야만 하기도 했습니다.

<하 여 가>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년까지 누리리라
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이방원이 띄운 이 시조의 
                    참뜻은 풀어서 말하자면 “정 선생 왜 그러세요. 
                    충신은 불사이군이요라는 말은 요즈음 세상에는 
                    맞지 않는 말입니다. 무너져 가는 고려조면 어떻고 
                    새로 등장하는 조선조면 어떻습니까. 그러지 말고 
                    우리에게로 오세요. 높은 자리도 드리고 큰 감투도 
                    드리겠습니다. 우리는 피차에 만수산 칡넝쿨처럼 
                    얽히어 한평생 재미있게 살아봅시다.
                    그러나 고려조의 충신인 포은은 그런 초청에 응할 
                    사람이 아니었습니다. “나 그런 사람 아닙니다”라는 
                    자신의 소신을 또한 시조 한 수의 담아 
                    이방원에게 보냈습니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<단 심 가>
                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
               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
                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

                   포은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새로 등장한 권력에 
                  부탁을 거절했던 것 같습니다. 한국 국민이면 누구나 
                  다 알고 있는 그대로 그는 한 마디로 “노”라고 하였기 
                  때문에 그런 비참한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습니다.
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~雪 山~